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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정보

석천암 석조불상군 (서산) - 예산군 예산 효교리 매각비, 예산 화전리 석조 사원 불상, 2억 장군 정료, 정대영 집

by travelmemo 2025.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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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천암 석조불상군 (서산)

방문일: 예산군 봉산면에는 보물로 지정된 예산 화전리 석조사원 불상이 있습니다. 물론 여기만 발견한 것은 아니고, 「예산 효교리의 매출비」, 「예산 화전리 석조 사원 불상」, 「2억 장군 정돈」, 그리고 「정대영 가옥」을 방문해 보았습니다.

 

‘예산 효교리 매향비’는 위치가 조금 모호한데… 효교리 249의 가까이에 도착하면… 아래 사진에서 소나무의 몇 개가 보이지만 그 소나무의 뒷면에 판매 비율이 있습니다.

 

소나무가 서 있는 곳으로 걸어가면… 「예산 효교리의 매출비」가 모습을 보여줍니다.

 

예산 효교리 매출비를 둘러보며 봉산면에서 가장 관심이 간 예산 화전리석조 사면불상을 찾습니다. 「예산 화전리 석조 사면 불상」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어 근처에 제법 넓은 주차 공간(화전 2도 15(화전리 4))도 볼 수 있습니다. 차를 세워 주위를 둘러보면 주변의 거친 언덕 아래에 돌의 경사 불상으로 가는 길을 알리는 이정표가 보입니다.

 

마일스톤으로 알리는 방향으로 잠시 언덕을 오르면 소나무 아래에 보호각이 보입니다.

 

보호각의 보살 안쪽에 석조 사면 불상이 있으며, 창살 넘어 석조 사면 불상을 볼 수 있습니다.

 

국가문화유산포털의 설명에 나오는 남면의 여래 좌상에서 시계방향으로 돌면서 천천히 사면불상의 모습을 담아보겠습니다. 사면불상의 모습이 오랜 탓인지… “남면 남방불상은 현재 머리, 양손, 오른쪽 무릎 부분 등이 파손되고 있다. 하지만 발굴 시 머리 발견으로 원래 모습을 충분히 복원해 볼 수 있다. 체구는 두꺼운 옷 속에 싸여 가슴이나 배 등의 양감 표현이 없다. 그러나 장대한 상체에 어깨는 비교적 자연스럽게 흘러내려 전체적인 윤곽이 팩 세련되고 당대의 뛰어난 걸작으로 생각된다. 양손은 결실되었지만, 손을 끼운 구멍의 자리와 출토된 손의 형태로 보고 시무반·소원인을 세웠다고 생각한다. 불의는 통견의로 오른쪽 어깨를 덮은 다이의 한 밑단은 가슴을 거쳐 배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 왼쪽 어깨를 덮은 대의가 있는 밑단은, 거의 직선에 가깝게 흘러 다리를 거쳐 상현좌(상현좌:불의가 아래로 흘러 떨어져 보이지 않는 대좌)를 이루고 있다. 직선적인 옷 주름과 평행 계단식의 강력하고 강인한 주름선은 인도의 칼의 불상을 기원으로 하는 운강석굴 불상에 유행된 고식에 따라 주목된다. 특히 대 안과 비슷한 불의를 입고 있지만, 이것은 의복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광배는 160㎝나 되는 거대한 주형의 후나가타 옹신광이다. 두광은 연꽃의 꽃무늬, 빗의 모양, 덩굴의 모양이 차례로 새겨져, 이 주위에 불꽃 무늬가 외곽에 새겨져 있다. 서상영현 리마에 여래삼존상(국보, 1962년 지정)이나 익산 연동리 석불여래좌상(보물, 1963년 지정)과도 친숙하지만, 소박하고 박진감 넘치는 것으로 보다 고식으로 평가된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예산화전리석조사면불상(예산화전리석조사면불상(조산 하나다리석조 사면불상))

 

ac.kr)) 자료 중에서]

 

「서면의 서방불상은 전면 노출되어 마멸 때문에 원모양을 상당히 잃어버렸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예산화전리석조사면불상(예산화전리석조사면불상)

 

"북면 북방불상은 동방불상과 비슷하지만 노출된 부분도 있어 원모양인 어느 정도 변형했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예산화전리석조사면불상(예산화전리석조사면불상)

 

“동면 동방불상은 입상인데 남방좌 불상보다 약간 소박하고 심플하다. 통견의 불의는 소박하면서도 단순하게 처리되었지만, 상쾌하고 우아한 특징을 잘 표현하고 있다. 광배는 8잎의 단판 연꽃문(반련 연꽃문: 단풍 연꽃의 꽃무늬)을 새긴 두광만 있는 만큼 신광은 나만의 처리를 대신하고 있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예산화전리석조사면불상(예산화전리석조사면불상)

 

“이러한 사방불상의 특징은 중국 공작석굴의 1·3·4굴과 친연성이 가장 강하고 용문양식과 상관된다. 또한 이러한 불상은 우리나라 최초의 석조 사방화라고도 할 수 있으므로 그 조형의지상 의미심장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불상은 우리 나라의 조각사 연구에서 백제미술사상 가장 귀중한 작품 중 하나로 여겨진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예산화전리석조사면불상(예산화전리석조사면불상) 사방 불상 주위를 다시 한 번 돌면서 사진에 담아 보겠습니다. 각 불상을 정면에서 보면 평면적으로 느껴진 부분이 각도를 바꾸면서 입체적인 모습으로 다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예산 화전리 석조사면 불상 다음으로 방문한 것은 봉산면 김칠리에 있는 2억 장군 정돈입니다. 2억 장군 정료 앞에서 차를 어디에 서야 하는 난감이 생기는데... 정려를 지나 좀 더 올라가면 재실이 있고, 재실 앞에 빈 공간이 있고, 거기에 차를 세워 잠시 걸어 내려와서 정룡을 보았습니다.

 

국가문화유산포털의 자료가 조금 간단해서... 좀 더 자료를 찾아보았습니다. “2억 장군 정료는 병자 호란 때 순수한 충신 2억을 기리는 정료로 1702년(숙종 28) 명정을 받아 세워졌다” 李檍의 본관은 경주, 자는 여의, 아버지는 현립 이석립이다. 에 참가하고 광주 쌍령으로 적을 만나 싸워 전사했다. 2억의 기록은 숙종실록에 자세하게 나온다. 1702년 [숙종 28] 기사에 “원주봉 이창창이 상언하고 그의 아들의 이장이 병자년의 난을 받고 병사 이이베와 함께 적에게 사망했기 때문에 왕정과 증직을 하자 윤호였다”고 말했다. 2억 장군 명정과 정료 건립은 2억 아들의 이경창이 주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출처"한국학 중앙연구원 향토문화전자대전

 

정돈의 안쪽 중앙에 명정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명정 현판 옆에 검은 배경에 흰색 문자가 쓰여진 것은 정료 중수기입니다. 정료의 내부 중앙 상단에는 1702년 내려진 충신증통정대부병 조참의 2억 지문의 명예 현판이 있으며, 뒤편에는 비각기와 정려 중수기가 걸려 있다. 호(李箕鎬)가 썼다. [출처"한국학 중앙연구원 향토문화전자대전

 

봉산면 봉림이 있는 정대영가옥입니다. 정대영 가옥 아래쪽에는 작은 연못이 있어 연못 주위에 놓고 대략 차를 놓을 수 있는 공간이 보입니다만…

 

정대영 가옥의 대문은 잠겨 있어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지만 울타리가 그리 높지 않아 울타리를 따라 걸으면서 안쪽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정대영 가옥은 정현령이 땅을 잡고 살던 곳에서 정대영의 할아버지 정홍모가 건립했다고 전한다. “연병인 2월)”이라고 쓰여 있으며, 1926년에 건축된 것을 알 수 있다. [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향토문화전자대전 디지털예산문화대전 정대영 가옥 (정대영 가옥 디지털예산문화대전(grandculture.net))

 

※이 기사에서 확인한 문화재 (예산군 봉산면) [보물] 예산 화전리 석조 사원 불상 [충청남도기념비] 예산 호겨리 [충청남도문화재자료] 2억 장군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정대영가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이의 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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